"시청자 여러분, 정말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이순재 배우.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국민 배우가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2025년 11월 25일 새벽, 70년 연기 인생을 살아온 배우 이순재가 향년 91세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
'대발이 아버지', '야동 순재', '꽃할배'... 세대를 넘어 사랑받은 국민 배우. 그러나 그가 가장 사랑했던 무대는 바로 '연극'이었습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3시간 넘는 연극의 주연을 맡으며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던 진정한 연극인.
오늘은 이순재 배우의 70년 연기 인생, 특히 그가 평생 열정을 불태웠던 연극 무대에서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영원히 기억될 그의 예술혼을 기립니다. 🌟

💔 2025년 11월 25일, 영원한 현역 배우의 마지막
향년 91세, 70년 연기 인생의 대단원
이순재 배우는 2025년 11월 25일 새벽,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출연 중이던 공연을 취소하고 휴식을 취해왔던 고인은, 재활 치료를 받던 중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었으며, 한국 연극인장으로 치러집니다. 아내 최희정 씨와 아들 이종혁 씨, 딸 이정은 씨가 상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부는 같은 날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故 송해에 이은 연예계 2호 금관문화훈장 추서이며, 배우로서는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 이후 3년 만입니다.
🎭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에서 시작된 70년 여정
서울대 철학과 학생이 배우가 된 이유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4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당시 대학생들의 값싼 취미였던 영화 관람에 빠져들었고,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운명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
1956년, 연극 무대에 첫발을 내딛다
해체되다시피 한 서울대 연극회를 극작가 김의경 등과 함께 재건한 그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것이 70년 연기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960년에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극회 중심으로 실험극장을 창립했습니다. 멤버는 김의경, 허규, 이기하, 김성옥, 김동훈, 이낙훈, 오현경, 여운계 등이었습니다. 이순재는 이를 '소극장 운동의 시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연극을 학문으로 공부하고 직업으로 택했다는 그의 말처럼, 이순재에게 연극은 단순한 취미나 일거리가 아닌 평생의 소명이었습니다.
📺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든 국민 배우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TV 시대 열다
1965년 동양방송(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인 드라마 배우 활동을 시작한 이순재는 한국 TV 60년 역사의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140편이 넘는 출연작
출연 드라마만 140편이 넘습니다. 자료가 미비하여 그동안 약 130편으로 알려졌지만, 본인도 "20대부터 60년 넘게 활동했는데 어떻게 고작 130편밖에 안 되냐"며 정정한 적이 있습니다. 단역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한 기록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로 본 이순재의 연기 스펙트럼 🌈
'사랑이 뭐길래' (1991-1992) - 대발이 아버지 시청률 65%를 기록한 이 드라마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표상인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로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큰 공감을 이끌어냈고, '국민 아빠'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허준' (1999) - 유의태 주인공의 강직한 스승 유의태 역을 맡아 최고 시청률 64%를 기록하며 사극에서의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2006-2007) - 야동 순재 70대에 MBC 시트콤에서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로 출연. 극중 야한 동영상을 즐겨보는 장면을 통해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젊은 세대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무한도전' 출연자 6명과 함께 대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당시 71세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연예대상 수상자가 되었고, 배우로서 처음으로 연예대상을 수상했습니다. 🏆
'꽃보다 할배' (2013) - 순대장 tvN 예능프로그램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나이를 잊은 열정을 보여줬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고, 백일섭 등과 스위스를 여행했을 때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극의 거장 '상도' (2001), '장희빈' (2002), '이산' (2007) 등 사극에서는 주로 묵직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맡아 극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기타 대표작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흥부네 박터졌네', '베토벤 바이러스' 등
🎬 2024년 KBS 연기대상,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네"
2024년 12월 말, KBS 연기대상 시상식. 후배 배우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이순재는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데뷔 70년 만에 받은 연기대상이었습니다.
드라마 '개소리' 원로 배우 '이순재'가 은퇴한 경찰견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 69년차 베테랑에게 또 한 번의 도전이었습니다.
가슴 울리는 수상 소감 💬
"언젠가는 기회가 한 번 오겠지 하고 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이 예순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겁니다. 공로상이 아닙니다.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됩니다."
이순재는 이 자리를 통해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 13년째 가르치던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을 정해 한 학기 동안 연습해 발표하는데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더니, 학생들이 '걱정하지 마세요. 모처럼 드라마 하시는데 잘하세요. 가르쳐주신 대로 저희가 만들어내겠습니다'라고 하더라.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정말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국민 배우가 대중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가 되었습니다. 😢
🎭 연극, 그가 평생 사랑한 진짜 무대
이순재 배우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진짜 사랑은 언제나 '연극 무대'였습니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하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연극 무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3시간 넘는 연극의 주연을 맡으며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던 진정한 연극인이었습니다.
'대학로의 방탄노년단' 💪

노년에도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장수상회', '앙리 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돈키호테' 등 대작 연극에 꾸준히 출연하며 '대학로의 방탄노년단'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대표 연극 작품들
시라노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대표작
베케트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들
말괄량이 길들이기 셰익스피어 원작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토머스 울프 원작
세일즈맨의 죽음 (2000년, 2016년) 아서 밀러의 불멸의 명작. 윌리 로먼 역을 맡았습니다.
늙은 부부 이야기 (2005년) 박동만 역으로 출연
라이프 인 더 씨어터 (2008년) 선배님 역으로 연극인의 삶을 그린 작품
돈키호테 (2010년) 세르반테스 원작
사랑별곡 (2014년, 2016년) 박씨 역으로 여러 차례 출연
황금연못 (2014년) 노만 역
앙리 할아버지와 나 (2017년) 앙리 역으로 출연
장수상회 (2018년) 김성칠 역. 대사량이 많은 배역을 소화하며 '노장 배우'의 상징으로 불렸습니다.
리어왕 (2021년, 2023년)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 그리스 비극의 전통(주인공이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 몰락하는 내용)을 이은 비극 갈래. 이순재는 리어왕 역을 맡았을 뿐 아니라 예술감독으로도 참여했습니다.
2021년 리어왕에서의 열연은 80대 후반 배우의 대사량과 연기력에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2023년 6월에도 LG아트센터에서 다시 리어왕 무대에 올랐습니다.
갈매기 (2022년) 안톤 체호프 원작. 이순재는 연출을 맡았을 뿐 아니라 쏘린 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2024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한 작품. 에스터 역을 맡았으나, 건강 문제로 2024년 10월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 2024년 10월, 건강 악화로 활동 중단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를 지키려 했던 배우
2024년 10월, 고인은 건강 문제로 출연 중이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공연을 전면 취소했습니다. 이것이 대중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고, 연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부축을 받아 무대에 올랐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거동이 다소 불편해 시상식에 나가지 못할 뻔했지만, "쓰러지기 전까지 평생 연기할 것"이라던 그의 의지로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2025년 들어 대외 활동을 중지하고 병원 치료를 받으며 재활에 힘썼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2025년 11월 25일 새벽 영면에 들었습니다.
🏆 70년 연기 인생이 남긴 찬란한 수상 경력
방송 3사 대상 석권
-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 2002년 문화관광부 문화의 날 보관문화훈장
-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 2007년 MBC 연기대상 사극부문 황금연기상
-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역대 최고령 연예대상 수상자)
- 2007년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공로상
- 2008년 MBC 연기대상 PD상
- 2009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 2009년 제6회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
- 2010년 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문화예술인부문 대상
- 2011년 제20회 금계백화장영화제 남우주연상
- 2012년 제1회 K-드라마 스타 어워즈 공로상
- 2016년 제1회 tvN10 어워즈 예능아이콘상
- 2018년 은관문화훈장
- 2019년 제39회 황금촬영상 공로상
- 2024년 KBS 연기대상 대상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
- 2025년 금관문화훈장 추서 (사후)
🎬 영화와 더빙까지, 장르를 넘나든 배우
수많은 영화 출연
1967년부터 2020년까지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 1967년 '대괴수 용가리' (박사 역)
- 2006년 '음란서생' (윤서 부 역, 특별출연)
- 2009년 '업' (칼 프레드릭슨 목소리 역, 더빙)
- 2013년 '저스틴' (순블루처 목소리 역, 더빙)
- 2017년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박중식 역)
- 2018년 '덕구' (덕구 할배 역)
- 2019년 '로망' (조남봉 역)
- 2020년 '미스터 주: 사라진 VIP' (햄스터 역)
특히 픽사 애니메이션 '업'에서 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 연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

🏛️ 정치인으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인물

제14대 국회의원 (1992-1996)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구 갑에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예술인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열었습니다.
특히 문화·외교 분야 의정 활동에 주력했으며,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무소속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정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은 "정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1996년 이후 연기에 복귀했고,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 동료들이 전하는 추모의 말
빈소를 찾은 후배 배우들
고인의 빈소에는 생전 그의 연기를 사랑한 팬들과 후배 연기자들의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장용 배우 "늘 말씀하시는 게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편안하게 잘 가실 거라고 마음속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학철 배우 "하늘나라에서 뵈면 그때 멋진 연극 같이 한번 해봅시다. 고맙습니다."
🌟 이순재가 남긴 연기 철학
"예술은 영원한 미완성"
"예술 창조에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끊임없이 정진하다 보면 어느 경지에 오를 뿐이지 그게 끝은, 완성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나이 예순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겁니다. 공로상이 아닙니다.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됩니다."
"언제가는 기회가 온다"
"언젠가는 기회가 한 번 오겠지 하고 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 나이와 상관없이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신념, 끝없이 정진하는 예술가 정신. 이것이 이순재가 70년 연기 인생을 통해 보여준 철학이었습니다. 💎
"쓰러지기 전까지 평생 연기"
"(노화로) 암기를 못해 NG를 수십 번 내서 문제가 되는 때가 은퇴 시기"라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었던 그에게는 '은퇴'라는 단어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와있는 사람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순재는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와있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90세의 나이에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던 천생 배우였습니다.
🎓 13년간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

제자 사랑도 남달랐던 스승
이순재는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 13년째 근무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수업이었고, 작품을 정해 한 학기 동안 연습해 발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드라마 '개소리' 촬영 당시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걱정하지 마세요. 모처럼 드라마 하시는데 잘하세요. 가르쳐주신 대로 저희가 만들어내겠습니다"라며 스승을 응원했습니다.
이 일화는 이순재가 얼마나 훌륭한 스승이었는지, 그리고 제자들과 얼마나 깊은 유대를 맺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 사전 제작 시스템을 일찍이 주장한 선구자
15년 전부터 '쪽대본' 비판
이순재는 이미 15년 전부터 '쪽대본' 날림 제작 현실을 비판하며, '사전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즘에서야 정착된 방송 제작 환경을 일찍이 예견하고 주장했던 선구자였습니다.
🌈 세대를 넘어 사랑받은 캐릭터들
'대발이 아버지'에서 '야동 순재'까지
1990년대에는 엄격한 가부장 '대발이 아버지'로 기성세대의 공감을 얻었고, 2000년대에는 '야동 순재'로 젊은 세대의 웃음을 책임졌습니다.
2010년대에는 '꽃할배'로 어린이 팬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영원한 현역'이었습니다.
'이순재'라는 하나의 연기 장르
"이미 '이순재'라는 '연기 장르'를 완성한 예술인"이라는 평가처럼, 그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장르가 되었습니다. 🎭
🏆 수상 소감이 말해주는 인간 이순재
1950년대 드라마 '풍운'의 아쉬움
이순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라마 역할과 비중을 두고 봤을 때 '풍운'으로 큰 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내심 했었다. 하지만 빈손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이었지. 근데 상을 안 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최선을 다한 과정이 있는데. 배우의 연기와 연출의 영상은 시청자와 관객 앞에서 절대 사기 칠 수 없는 분야야. 시청자도 다 알거든. 대신 담배를 끊어 건강할 수 있었어."
상을 받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결국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진정한 예술가였습니다. 🌟
👨👩👧👦 가족과 함께한 91년의 인생
아내 최희정 씨와의 동행
이순재의 곁에는 항상 아내 최희정 씨가 있었습니다. 아들 이종혁 씨, 딸 이정은 씨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고인은 2025년 11월 25일 새벽,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 빈소 및 발인 정보
한국 연극인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
- 빈소: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 장례 형식: 한국 연극인장
- 상주: 아내 최희정, 아들 이종혁, 딸 이정은
- 장지: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에덴낙원 봉안당
🌟 마지막 무대, 천상의 연극으로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첫 무대에 오른 지 70년. 이순재는 2025년 11월 25일, 마침내 천상의 무대로 올라갔습니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했던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를 지키다 떠났습니다. 😢
구순의 나이에도 3시간 넘는 연극의 주연을 맡으며 "쓰러지기 전까지 평생 연기하겠다"던 그의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 '꽃보다 할배'의 순대장, '리어왕'의 비극적 왕...
그는 어떤 배역이든 완벽하게 소화하며 '이순재'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70년 연기 인생은 끝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과 정신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예술은 영원한 미완성이고,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던 그의 말처럼, 이순재라는 예술가는 이미 완성된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
하늘나라에는 더 큰 무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고 계실 이순재 배우님.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영면하소서. 🙏
🕯️ 우리가 이순재를 기억하는 방법
1. 그가 남긴 작품들을 다시 보기 '사랑이 뭐길래', '거침없이 하이킥', '허준', '꽃보다 할배' 등 그의 대표작들을 다시 감상하며 그의 연기를 기억합시다.
2. 연극 관람하기 그가 평생 사랑했던 연극. 우리도 연극 무대를 찾아 그의 예술혼을 이어갑시다.
3. 젊은 배우들을 응원하기 13년간 후학을 양성했던 그처럼, 젊은 배우들을 응원하고 격려합시다.
4. '연기는 연기로 평가'하기 인기나 다른 조건이 아닌, 순수한 연기력으로 배우를 평가하는 문화를 만듭시다.
5. 끝없이 정진하는 자세 배우기 90세까지 배우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의 정신을 본받읍시다.
이순재 배우님의 명복을 빕니다. 🌹
1934년 11월 16일 ~ 2025년 11월 25일
"시청자 여러분, 정말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순재 #이순재별세 #이순재배우 #국민배우 #연극배우 #원로배우 #대발이아버지 #야동순재 #거침없이하이킥 #꽃보다할배 #사랑이뭐길래 #허준 #리어왕 #연극인장 #이순재연극 #이순재사망 #이순재부고 #이순재추모 #KBS연기대상 #최고령배우 #금관문화훈장 #연기인생70년 #서울대철학과 #TBC배우 #한국연극 #대학로연극 #배우추모 #영원한현역
※ 이 글은 공개된 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